[에술의 장터] 김경식 작가의 <어머니의 속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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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천시장애인복지관
- 작성일 20-05-2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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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속옷
어머니가 옷장에서 낡은 속옷을 꺼내 입는다
선명하게 그려졌던 얼룩말 줄무늬는
몸 속 어딘가 숨어 이미 사라졌고
탱탱하던 고무줄은 미역줄기처럼 축 늘어져
흘러내릴 것 같이 아슬아슬 걸쳐있다
사철마다 남편과 자식들이 입을 속옷을
아낌없이 사면서, 아버지가 언제 입다
벗어놓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빛바랜 후줄근한 속옷을 버리지 못하고
새것마냥 거리낌 없이 다시 입는 것이다
애써 빨아 놓은 것 한 번 더 입고 버려야지
바지 속에 입으면 안 보인다, 걱정마라
삼각보다 사각이 더 편하다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눈부신 속옷들을 보며
어머니의 인생도 낡은 속옷의 고무줄처럼 늘어졌을까
젊은 날 고무줄처럼 팽팽했던 어머니의 긴장감이
이제는 나의 삶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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