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장터] 김경식 작가의 시 <정미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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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김천시장애인복지관
- 작성일 20-06-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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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철문이 굳게 닫힌 정미소 앞을 지날 때면
내 마음도 굳게 닫힌다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비바람만 드나들고
가쁜 숨을 헐떡이며 쌀과 쭉정이를
거센 바람으로 고르며 돌아가던 기계는
멈춘 지 오래, 더 이상 잘못을 가리지 못한다
어느 날 농사에 필요한 왕겨 가지러 갔다가
아저씨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쓰러져
욕창과 당뇨 합병증으로 돌 지난 어린 자식 두고
뜬눈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했다
쌀포대처럼 채곡채곡 쌓아둔 돈은
병원비로 쭉정이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아저씨는 귀신이 되어서도 정미소 앞을 서성이며
기계를 돌리고 싶었던 것일까
녹슨 철문 사이로 기계들이 웅성거린다
귀신 닮은 쌀알을 차르르 쏟아내던
내 유년의 시간들이 그곳에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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